미정(未定)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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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
 
결국 30분 동안 게임 캐릭터와 함께 강해진 용기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컬러링이 따로 없는 디폴트 컬러링의 뚜루루루 소리를 들으며 용기는 긴장으로 변질되었다.
 
"여보세요?"
 
받았다. 받아버렸다. 그냥 받지 말지...
 
"어 나야."
 
"아, 오빠."
 
이름이 뜰 텐데 서로 모른 척을 하였다. 그녀도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일단 이유를 알아야 했기에 이유부터 물었다.
 
"아니 그냥... 잘 지내나 궁금해서..."
 
대답을 회피한다.
 
"그래? 음 뭐... 잘 지내."
 
나도 대답을 피했다.
 
"응... 다행이네..."
 
내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뭔가 미안해서 내가 먼저 한발 딛어보기로 했다.
 
"무슨 일인데."
 
얕게 웃음 지으며. 부담스럽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실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다. 생각해보니 먼저 너도 잘 지내냐고 물어봤어야 했던 것 같다. 리스폰 버튼 어디 없을까...
 
"어... 오빠, 혹시..."
 
여자친구 생겼냐고? 전에 사귀던 애를 다시 사귀게 되었단다. 오른손이라고, 작지만 힘 세고 믿음직한 아이야. 너도 아는 애야. 널 기쁘게 해준 적도 많고. 현실도피는 이쯤 하자.
 
"주말에 시간 있어?"
 
덜컹. 왜지? 왜 시간을 묻지? 불안하다. 혹시... 아니, 아니겠지.
 
"어... 왜?"
 
제발 아닐 거야. 아니라고 해줘.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주님, 의느님
 
"오빠 보고 싶어서..."
 
후우우우우아아아... 마음 속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실 병원 가자고 할까 봐 걱정했었다. 피임은 확실했지만 뭐든 100%는 아니니까... 이런 속물 같은 생각을 한 내가 싫지만 사랑스러우니 봐주자고 생각했다.
 
"어어..."
 
주말. 물론 시간 많다. 넘친다.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 다시 보는 상황이 뭔가 영 껄끄럽지만 못 만날 것도 없다.
 
"일요일은 시간 괜찮아."
 
이틀 다 괜찮다고 하면 뭔가 아무것도 안 하는 남자 같아서 하루만 괜찮다고 해버렸다. 뭐 아무것도 안 하는 거 맞긴 하지만...
 
"그럼 일요일에 XX에서... 볼 수 있을까?"
 
"그래 점심 때쯤에 가면 되지?"
 
"응 점심에."
 
"그럼 그때 보자."
 
"알았어. 그럼..."
 
"아, 잠깐,"
 
"응?"
 
리스폰은 없어도 기회는 다시 찾아온다.
 
"잘 지냈어?"
 
"응."
 
한 음절이었지만 목소리엔 기쁨이 담겨있었다. 역시 묻는 게 정답이었네.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의 데이트가 정해졌다. 머리 정리하고 옷 다림질을 해야 할 것 같다. 아, 폼 클랜징도 다 썼는데 그것도 사자. 혹시 섹스 한번 할 수 있을까 라는 속물 같은 기대감을 품고서 그 날을 준비한다. 아... 아까 딸 치지 말걸... 이것도 리스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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